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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이 오신다

새벽예배 2022.06.28 | 시편 24편 1-10절 | 이선기 목사



시편 24편 1-10절


  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0.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새벽 묵상


여러분 근래에 언제 결혼식에 가 보셨습니까? 결혼식에 가면 무슨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저는 결혼식에 갈 때마다 꼭 마음에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결혼식의 주인공은 오직 신랑, 신부이다. 혹시 신랑 신부가 주인공 되지 못하도록 하는 꼴불견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결혼식은 주례자가 신랑 신부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례사를 너무 지루하고 길게 해서 전체 결혼식 하객들을 지치게 만드는 경우가 있고요. 신랑 신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다거나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해서 그날의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주례자들이 있습니다. 신랑 친구 중에 꼴불견이 있는데 신랑이 너무 키가 작아서 키 높이 구두를 신었는데 신랑 친구들이 신랑신부와 사진 찍을 때 신랑 곁에 키 큰 친구들이 너무 붙어서 신랑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편 신부 친구 꼴불견도 있습니다. 신부가 좀 저처럼 몸이 풍성하여 약간 버겁게 웨딩드레스를 입었는데 너무 슬림하고 예쁜 신부 친구들이 옷도 예쁘게 입고 신부 가까이에 있으므로 신부가 빛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모임에 가시든지 주인공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오로지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지혜롭고 현명한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경에서 주인공을 주인공 되도록 주인공만 빛나도록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자신을 희생하며 주인공을 마음껏 높인 인물이 있는데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마치 결혼식에 신랑신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도우미가 되는 들러리 같이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빛나게 하는 도우미로 살았습니다. 마태복음 3장 11-12절에 보면 세례요한은 오실 메시야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하실 일, 즉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실 것과 또한 능력이 많으신 그분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고 선포하는 세례요한. 저와 여러분도 세례요한처럼 주인공되시는 우리 주님을 확실히 세우고 높이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시편 24편은 “시온산 왕의 노래”라고 하는데 어제 새벽에 말씀드린대로 시편 22편이 과거의 시편이요, 23편이 현재의 시편이라면 이 시편 24편은 미래에 오실 왕의 왕을 노래한 시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시편 24편의 배경은 다윗이 즉위한 후 기럇여아림에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시온산으로 메어 올리면서 각종 악기에 맞춰서 부른 노래입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모셔오게 될 때에 다윗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하나님께서 내게 오시는 기쁨, 마음이 뭉클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옷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아내인 사울의 딸 미갈이 놀리고 비꼬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존귀한 하나님 앞에서 마음껏 춤을 추며 기뻐했습니다. 바로 이 분위기가 시편 24편입니다. 장차 다시 오실 미래의 재림의 주님을 노래하는 시편 24편, 이 시편 24편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날에 즐겨 낭송되기도 하는 시편이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우리가 이 시편 24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첫 번째로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만유를 친히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표현하며 찬양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중에 최고의 일하심은 바로 세상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만물의 창조주요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우선 가장 먼저 밝히고 높였던 다윗

1절 보십쇼.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하나님은 인간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곧 모든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소개하며 마음껏 높이고 있습니다.

아까 결혼식 말씀 드렸는데 결혼식에 사회를 맡은 분들을 보면 정말 남사스러운 표현들, 손이 오그라드는 표현들을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해야 합니다. 신랑을 소개할 때 그냥 “신랑 입장!” 하지 않습니다. 그 앞에 수식어를 붙여서 신랑을 최고의 인물로 PR하며 소개합니다. 무슨 학교를 낳았고 외모는 어떻고 여러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으나 경쟁자를 다 물리치고 최고의 남자가 이 신부를 선택했다고 장황하게 늘어 놓습니다. 제가 결혼식할 때 사회자를 세웠으면 제 자랑을 좀 했을 텐데.. 그 때 있던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맡아서 하셔서 그런지 참 무미건조하게 하셨습니다. 매너가 세계적인 남자랄지,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남자랄지 뭐 그런게 있어야 할 텐데...아무 표현 없이 그냥 “신랑 입장” 하시더라구요.

신부 입장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더 잘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혹시 사회자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인이랄지 미스코리아 나가려고 했는데 1등할 것 같아서 참았다랄지 뭔가 신부를 그날의 주인공으로 높이는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결혼식의 주인공 신랑 신부 정도가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마음껏 자랑하고 높이려고 하는 중에 하나님의 가장 첫 번째 특징, 그 누구도 따라할 수도 없는 만물의 근원이요 만물의 창조주 되심을 마음껏 소리높여 소리질러 노래하고 있습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절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저와 여러분 삶 속에 첫 번째 자랑이 하나님의 창조하심이요 다스리심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먹든지 마시든지 즉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는 일, 생활하는 모든 순간순간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항상 찾으시길 바랍니다. 늘 하나님의 은혜 속에 감동하고 감격하면서 사는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해도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부터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이야기가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옵니다. 머리 속에 주로 먹는 것만 있는 분들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간식으로 무엇을 먹을지 계속 먹는 이야기만 하구요. 늘 얼굴 외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수도 없이 거울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외모 이야기만 집중하게 됩니다. 돈이 중요한 분들은 모든 게 돈 버는 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첫 번째 관심이 만유를 지으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삶 속에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감동하고 또 감사하고 나도 모르게 툭 하나님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하나님의 사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며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전쟁에 능하신 영광의 왕이시라고 표현했습니다. 7절부터 10절을 먼저 보십시오. 7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이 표현은 실제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 성문에 도착했을 때 레위합창단이 부른 찬송입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예루살렘 성의 문들을 의인화해서 머리를 들고 왕의 왕 이신 하나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 하는 명령입니다. 9절에 한 번 더 반복해서 표현합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7절부터 10절의 표현이 질문을 주고 받는 듯한 특이한 문체인 것을 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노래하는 자들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한쪽에서는 질문 형식을 띤 노래를 부르면 곧바로 또 다른 한쪽에서 답변 형식의 노래를 서로 교창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옛 노래 중에서도 쾌지나 칭칭 나네 그런 노래 있지 않습니까? 앞에서 누가 선창으로 부르면 뒤에서 답가로 쾌지나 칭칭 나네 그것과 비슷한 형식입니다. 8절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외치면 답하는 이들이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이렇게 주고 받고 하면서 서로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 마음껏 소리치며 최고조로 찬양했다는 사실. 10절에도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하면 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답하는 형식이었다는 것, 여러분 상상만 해도 신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상상만 해서 될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요 다스리시는 분이라고 믿는다면 그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냥 있으면 안 될 사람들입니다. 이 죄인을 구원해 주셨는데 까짓거 날마다 목 놓아 목이 쉬도록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강하신 분이신지 능력자 중에 능력자이신지 크게 노래하고 외치고 찬양해야 합니다. 여리고성이 그냥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명령대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매일 한 바퀴씩 돌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에는 성을 일곱바퀴나 돌면서 나팔소리가 남과 동시에 온 이스라엘 백성이 큰 소리로 외치게 됩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를 위하여! 그 튼튼한 여리고성이 힘없이 무너지게 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찬송할 때에 기운차게 강하게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조는 사람처럼 힘빠져 있지 말고 힘있게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힘찬 강한 찬송의 사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그리고 능력의 하나님을 맞이하는 자는 그 마음과 행실이 경건해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만물의 창조주요 능력의 하나님을 모시는 것은 내가 모시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에게 오심 자체가 너무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우리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맞이할 수 없음 또한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이것을 잘 알고 하나님을 맞이하는 자가 꼭 갖추어야 할 네 가지의 것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네가지를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항상 기억하고 준비하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늘 가졌을 것입니다. 첫째는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4절 보십쇼. “곧 손이 깨끗하며” 형제를 손가락질 하고, 도둑질과 뇌물과 착취와 살인으로 얼룩진 손으로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4절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우리 인간의 마음은 모든 악의 근원이 됩니다. 가만히 있어도 악을 행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다스리고 안경을 닦듯이 매일매일 닦고 또 닦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여기서 허탄은 히브리어로 “라싸우”즉 우상숭배의 뜻입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마음에 두는 것 그건 전부다 우상숭배라는 사실, 마지막으로 거짓 맹세치 아니해야 합니다. 거짓 맹세는 혀로 범죄하는 것 또는 의지와 감정의 죄라는 사실.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던 당시 히브리인들을 지칭하면서 썼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손이 깨끗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하셨고 뜻을 하나님께만 두었습니다. 거짓 맹세치 않으시고 진리의 길 의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 닮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임재의 언약궤가 들어오는 다윗의 기쁨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기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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