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07.13 | 고린도후서 4장 1-12절 | 이선기 목사
고린도후서 4장 1-12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새벽 묵상
Just A Closer Walk With Thee 라는 찬양, 나는 비록 약하나 라는 제목의 찬양을 혹시 아십니까? 분명히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나는 비록 약하나 주의 힘은 강하다 나를 보호해주는 주님 곁에 가까이 가겠네 주님 곁에 가까이 나아가기 원하네 나를 지켜주시는 주님 곁에 가까이 가겠네 나는 교만하여서 여기 홀로 섰으나 나 이젠 고집 버리고 주님 곁에 가까이 가겠네 주님 곁에 가까이 나아가기 원하네 나를 보호해주는 주님곁에 가까이 가겠네. 이 곡이 우리 한국교회 성도님들에게 특별한 이유는 4년 전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신 세계적인 복음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께서 1973년 내한집회 때 여의도광장에서 가수 조영남씨가 번역해서 부른 한국 복음성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가스펠송이기 때문입니다. 흑인 성가곡으로 많은 미국 가수들이 불렀고요. 지금까지도 큰 감동과 은혜를 끼치는 좋은 찬송 중에 하나입니다. 이 가사가 오늘 본문에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내용과 딱 맞습니다. 나는 비록 약하지만 질그릇과 같지만 이 질그릇에 담긴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보배이시다. 바울의 그 겸손과 그 주님사랑의 마음을 저와 여러분 마음속에 새기시면서 나도 어떻게 바울처럼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난 고린도후서 3장에서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들이 영광스러움을 소개했었습니다. 나의 추천서는 바로 여러분이다. 새 언약의 일꾼으로 영광의 영광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는데, 오직 얼굴에서 수건을 벗어버리고, 즉 장차 없어질 단기간의 것들은 다 벗어버리고 주인공이신 주님만 바라보라. 주님만 바라보며 자유를 누릴 것이다. 거울을 보는 것 같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회복될 것이다. 기억하시죠? 이제 4장은 바로 3장의 내용과 이어지는 것으로 또 다른 표현 복음을 전할 때에 자신을 감추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만을 증거하는 표현으로 “질그릇과 보배 비유”를 통해서 오직 주님만을 높이고 바울 자신은 철저히 낮아지는 그런 표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즉 주님과 나를 철저히 비교하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만을 존귀하게 하려고 하는 마음. 저와 여러분에게도 늘 이런 마음으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지나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장로님이 대표 기도하러 강대상에 올라가셔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하죠. 하나님, 위대하시고 전능하시고 한계가 없으시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면 온 세계를 능력의 오른 팔로 다스리시는 존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이 벌레만도 못한 파리만도 못하고 모기만도 못한 이 수백 번 죽어 마땅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건 좀 지나치죠. 주님을 높이되 나의 약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어주시고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을 적절히 비교하면서 적절하게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오직 주님을 주님 되게 선포하고 고백하며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들을 비교하면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어떤 메시지 무슨 교훈을 전하고자 했는가?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망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순간이 와도 괴로운 일을 겪어도 여기저기 혼란스러워도 흔들리지 말고 굳건하게 서라 하는 메시지입니다. 바로 8절 한 절이 4장 전체의 중심 내용을 다 담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데, 잠깐 살펴보면
1. 첫 번째 바울은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욱여쌈을 당하다 라는 말은 서로 싸운다 그런 약한 표현이 아닙니다. 헬라어로 “들리보메노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즙을 짜기 위해 포도를 짓누를 때”쓰는 단어입니다. 세상에서 성도가 당하는 고난의 극심함, 견딜 수 없이 억눌리고 고난의 무게가 너무 무거울 때를 나타냅니다. 이런 때에 싸이지 아니하며, 즉 이렇게 모든 것이 억눌려 “히나님 이 질그릇 깨집니다. 눌려서 다 박살납니다”기도하면 솔직하게 다 아뢰이면 네가 깨지는게 아니다. 너만 깨지는게 아니고 니가 담고 있는 나도 부서진다 하시면서 내게 맡기라. 하시고 위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7절 다시 보십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즉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으니 염려하지 말아라. 가장 크신 분이 그 눌림을 해결하실 것이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열왕기하 6장에 엘리사와 게하시가 아람군대에 완전히 포위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십쇼. 완전 포위되었다는 말이 있죠? 쥐 한 마리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갈 구멍 없이 완전히 포위되었을 때에 두려워 떨고 있는 게하시를 보면서 엘리사가 기도하죠. 하나님 게하시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영적 눈이 열리니까“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그 말씀 그대로 도너츠 모양으로 동그랗게 안에서 밖을 향해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와 게하시를 철통경계 완전 밀착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 나는 비록 약하나 주 예수는 강하다 고백하시고 눌려서 부서질 것 같을지라도 절제절명의 위기가 와도 절대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싸이지 않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되실 줄 믿습니다.
2. 두 번째로 다시 8절 보십쇼.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낙심이란 말이 중요한데 이 낙심은 헬라어로 “엑사포로스” 즉 ~로 끝없이 빠져가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걱정 근심 고민이 생기면 줄줄이 계속해서 커지고 커져서 떨어지고 또 떨어져서 아주 깊은 곳까지 떨어져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의 나락까지 떨어지는 것 그게 낙심입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4장의 시작을 낙심이야기로 시작한 것 다 이유가 있습니다. 1절 보십쇼.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이 낙심이란 같은 말이 바로 염려입니다. 누가복음 12장 25절에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하셨습니다. 그 다음 26절도 염려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바울은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혈액형이 A형인 분들은 소심해서 더 많이 염려하시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이 낙심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A형이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압니다. 미리 걱정하고 미리 염려하고 항상 긴장해 있고 제가 지금 이렇게 보기에는 소도 때려잡을 것 같이 생겼어도 저는 사실 굉장히 소심합니다. 걱정이 많습니다. 행여나 설교가 조금 잘 안됐다 싶으면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하는 편입니다. 설교 중에 한 분이 졸면 아니라고 하면서도 내 설교가 많이 졸리는구나 하고 낙심하기 쉬운 성격입니다. 얼굴도 잘 못 쳐다봅니다. 정말 노력 많이 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사람에게 있는 낙심과 염려를 분석해 보니까 우리의 낙심과 염려가 지나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통계가 이렇습니다. 40%는 없는 일을 걱정하고, 30%는 지난 일을 걱정하고, 12%는 내가 걱정 안 해도 될 일을 걱정하고, 10%는 불확실한 일을 걱정하는 것이고, 8%만이 어쩔 수 없는 걱정이다. 영국의 위대한 성자, 기도의 성자인 죠지 뮬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다. 그러나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 아무리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 나는 비록 약하나 나는 비록 낙심하고 염려하나 주 예수는 강하다. 강한 주님을 붙잡고 이겨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세 번째로는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박해를 받는다는 단어는 “디오코메노이”라는 단어로 쫓김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3장 50절에 보면 매번 전도지에서 거의 대부분 쫓김 당했던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때문에 여기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쫓겨나고 저기서 또 쫓겨 가고 다윗이 장인어른 사울왕의 질투 때문에 수년 동안 쫓겨 다녔던 것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쫓겨다님 그것도 가장 가까워야 할 장인으로부터의 쫓겨다님 때문에 다윗이 강해지고 또 강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고생하고 박해를 당한만큼, 힘들게 훈련받은 만큼 크게 사용하시되 더 크게 이스라엘 최고의 왕으로 사용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사람이 아니라 고생했으니까 고생한 만큼 쓰임 받는 사람들입니다. 너무 힘들어도 잘 견뎌내시길 바랍니다. 나는 비록 약하나 주 예수는 강하다. 나를 치킨이 아니라 독수리처럼 강하게 훈련시키셔서 창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가장 존귀한 주의 자녀로 만드시는 하나님께 맡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4. 마지막으로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거꾸러뜨림”은 “카타발로메노이”라는 단어로 내려친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14장 19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여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을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그런 상황에서 쓰는 말이 바로 카타발로메노이 그러니까 행여 돌로 맞고 거의 죽은 줄로 여길 정도의 숨만 겨우 쉬는 상황, 버려지고 내쳐지는 그런 상황이 와도 절대로 망하지 아니하게 하신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그동안 복음 전하다가 당했던 수없는 생사의 갈림길을 겪었던 상황들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뒤에 고린도후서 11장 후반부에 보면 바울이 얼마나 많이 죽음의 순간을 경험했는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장 23절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이 표현은 사십대를 때리면 완전수 곧 죽음을 뜻하기에 죽기 바로 직전까지 때렸다는 것입니다.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 의식을 잃을 때까지 때리는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는 것,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등등, 바울이 이렇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죽음의 고통을 여러번 겪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딱 하나, 나는 비록 약하나 주 예수는 강하다. 비록 지금 육신의 고통으로 죽는 위기까지 여러번 겪게 되나 가장 큰 고통 당하시고 정말 십자가에서 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요. 나는 비록 약하나 비록 육신은 죽도록 매를 맞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으나 주 예수는 강하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신 분 부활하신 분이시기에 결국 최후 승리할 것을 믿기에 이 극도의 고통을 끝까지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여러분 지금 혹시 다른 사람에게 도저히 말 못할 정말 죽을 것 같은 카타발로메노이 거꾸러뜨림의 위기 가운데 있는 분 있습니까? 절대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승리하신 죽음까지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는 강하다. 강한 주님께서 부활의 주님께서 다시 일어나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다시 일어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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