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03.14 | 누가복음 7장 36-50절 | 이선기 목사
누가복음 7장 36-50절
36절.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절.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절.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절.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절.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절.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절.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절.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절.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절.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절.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9절.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3월 14일 새벽 묵상
여러분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단편소설을 아십니까? 실명이 윌리엄 시드니 포터이지만 필명인 오 헨리로 잘 알려진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 발간한 단편전집에 수록한 작품 중의 하나가 이 크리스마스 선물인데 원 제목은 the Gift of the Magi 매기의 선물로서, 매기란 예수님의 탄생 당시 아기 예수님께 선물하기 위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소설 내용은 동방박사와 직접 관련이 없구요. 다만 두 주인공을 동방박사처럼 매우 현명한 자들이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이 작품의 내용은 잘 아시겠지만 이렇습니다. 두 가난한 젊은 부부 짐과 델라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야기입니다. 돈이라곤 1달러 87센트 밖에 없던 아내 델라는 평상시 남편 짐이 가지고 다니는 시계에 줄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대대로 가보로 내려온 그 시계에 맞는 줄을 선물하고 싶어 합니다. 반면에 짐은 풍성하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진 델라에게 그 머리에 잘 어울리는 머리핀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각각 서로에게 말하지 않고 다른 결정을 하죠. 드디어 크리스마스 당일,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에게 시계줄을 선물하는 델라, 그리고 자신의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핀을 사는 짐. 이들의 선물은 서로에게 더 이상 사용가치가 없어졌지만 소설은 이들의 진심과 서로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최고의 선물임을 우리에게 가르침과 동시에 깊은 감동을 줍니다.
크리스마스가 한참 지났고 지금은 사순절이지만 이렇게 서로에게 꼭 필요하고 귀한 선물을 줄 수 있는 훈훈함이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 속회에 그리고 우리 교회 모든 모임에 이런 훈훈함이 넘쳐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경에서 이 짐과 델라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장 귀한 것을 희생하는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님께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여인은 38절에 보니까 울며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왜 이 여인은 이렇게 자기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아낌없이 부어드리고 주님은 왜 이 여인을 탓하는 바리새인 시몬에게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어떤 교훈을 알려주시려 하셨는가? 많이 들어보신 본문의 이야기지만 다시 살펴보시면서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귀한 교훈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우선 특별한 것은 오늘 본문의 주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는 사 복음서 모두에 나타나고 있지만 오늘 본문 누가복음에 나오는 주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하고 다른 복음서에 나온 향유를 부은 여인은 같은 여인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주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는 마태복음에는 26장 6-13절에 마가복음에는 14장 3-9절에 요한복음에는 12장 1-8절에 나옵니다. 그 위치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오늘 본문에는 누가복음 전체 24장 중에 7장 즉 앞부분에 이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는 뒷 부분에 나온다는 것, 즉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 나온 여인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공생에 말기에 일어난 일이었고 오늘 본문의 사건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시대적으로도 다르고 완전히 다른 여인의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더 확실한 것은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 나온 주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에는 끝에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 여인은 내 장례를 위하여 이렇게 했다고 표현하셨는데 오늘 본문만은 장례 이야기는 없고 향유를 부은 여인의 행동을 바리새인 시몬의 행동과 비교하면서 교훈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비교하시면서 교훈하셨을까요?
1. 첫째로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그저 유명한 사람이지 나의 유일한 구세주 되심을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이 귀한 분이신 것 같기도 하고 약간의 질투심 내지 경계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대하였습니다. 36절 보십쇼.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이 문장만 보면 이 바리새인은 참 사람을 환대하는 사람이구나. 혹은 주님이 누군지를 알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초대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39절 보십쇼.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 알았으리라 하거늘” 여기서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이라는 조건의 문장을 보면 바리새인이 주님을 어떻게 여기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저 선지자 중에 하나로 들어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질병 있는 자를 고치고 기이한 일을 행하는 선지자 중에 유명한 한 사람으로만 알았다는 것,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메시야가 아니라 그저 선지자 중에 한 사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 중에 근래에 핫한 인물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사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의 마음을 꿰뚫어보시고 바리새인 스스로 답을 찾도록 교훈하시고 있습니다. 41절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 둘 다 갚을 힘이 없었는데 그 빚을 탕감 받으면 누가 더 빚 주는 사람을 사랑하겠느냐? 43절 보십쇼. 바리새인 시몬이 대답합니다. “많이 탕감을 받은 자니이다” “네 판단이 옳도다” 즉 이 여인은 많이 탕감받은 자이기에 너무 큰 용서를 받은 자였기에 나를 더 많이 사랑해서 이렇게 향유를 부은 것이다. 48절에는 더 정확하게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신지 알도록 아주 분명한 선언을 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즉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 죄인들을 용서받게 하기 위해 너희 가운데 온 메시야다 구세주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아라. 하시는 교훈입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제가 교회를 30년 40년 다녔습니다. 오래 다니셔서 주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 교회를 오래 다니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 내게 주님은 누구신가?가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바리새인 시몬처럼 주님을 선지자 중에 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유일한 목적, 내게 영원한 생명 주신 구원의 주님, 오늘 본문의 향유 부은 여인처럼 이 세상에 가장 귀한 것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전부되신 주님이신가? 나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내 대신 물과 피를 다 흘려 죽어주신 생명의 은인, 내 죄를 흰 눈보다 더 희게 깨끗이 씻어주셨을 뿐만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 영생을 얻게 하신 유일하신 구원자,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 주님 없이는 난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로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만이 내 삶의 이유, 내 삶의 목적 맞습니까?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이 바리새인의 이름이 뭐라고요? 시몬입니다. 우리가 아는 시몬 누가 있습니까? 예 베드로의 이름이 시몬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1장 부활의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 오셔서 뭐라고 부릅니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시몬이라는 이름은 “듣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듣는다는 그의 이름은 적극적인 의미와 아주 부정적인 의미 즉 전혀 상반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적극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 기도하면 하나님이 잘 들어주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의미는 너무 여러 소리를 듣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 변덕이 심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바리새인 시몬이 이 일을 겪은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바리새인 시몬에게 적극적인 의미의 시몬이 되기를 바라시면서 네 이름 시몬의 뜻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라 잘 듣고 깨달으라 내가 메시야인 줄 이제는 깨닫고 내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널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라 하는 마음으로 바리새인 시몬에게 목 놓아 교훈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부정적인 의미의 시몬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고 나의 죄를 씻으신 날 위해 죽으신 분 나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주님을 분명히 고백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잘 들어주시는 적극적인 의미의 시몬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향유를 부은 이 여인, 이 여인의 아픈 마음을 알아주신 주님께 눈물로 감사하며 모든 것을 드린 그 마음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여인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몸을 파는 여인이었습니다. 37절을 보십쇼.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여러분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 이 표현은 “죄에 몸을 바친 여자”라고도 해석이 되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죄인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몸을 파는 여인을 의미합니다. 동네에서 누구나 다 아는 몸을 팔아서 먹고 사는 여인,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죄인, 그런데 이 여인이 37절에는 그냥 이 여인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 이 여인이 바리새인의 집에 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일반인의 집에 들어가도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여인인데 바리새인의 집에 즉 유대 경건주의 분파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즉 도둑이 경찰서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왜 이 여인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사람들의 놀림과 비난을 감수하고 심지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는데 이런 것을 감수하고 주님께 갔는가? 사람들의 놀림과 비난과 돌 던지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38절 예수님의 뒤로 그 발 곁으로 다가갑니다.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십니다. 여인으로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머리털로 더러움의 상징인 발, 주님의 발을 닦고 즉 나의 가장 귀한 것이 주님의 가장 더러운 부분만도 못합니다. 그런 의미를 담아 낮아지고 낮아져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붓습니다. 눈물은 자기 죄에 대한 회개를 뜻하죠.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향유, 자기가 평생 모은 그 귀한 옥합을 깨고 향유, 즉 자신의 전부를 주님께 부어드립니다. 여러분 이 옥합에 든 향유는 주로 결혼하기 위해 신부가 준비하는 가장 귀한 예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인으로서 가장 귀한 것을 드린 여인, 평생 모아 드릴 수 있는 전부를 아낌없이 다 주님께 드리는 이 여인의 사랑의 표현,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이 여인이 이렇게 전부를 다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전부보다 더 귀한 것을 먼저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장 아픈 부분을 알아주시고 품어주시고 끌어 안아주시고 다 받아주신 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설교 제목을 제가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내 모든 사랑 드려요”라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수 조하문 씨의 노래 가사인데 그 가사가 어쩌면 이렇게 이 누가복음의 향유를 부은 전부 드린 여인의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는지..
여러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고통의 순간마다 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마다 끌어 안아주시고 다른 사람은 몰라주었던 내 마음을 알아주시고 들어주시고 받아주셨던 순간순간을 기억하시고 다시 그 감동이 되살아 나시길 바랍니다. 나를 죄로 인해 죽을 운명에서 건져주시고 구원해 주신 그 은혜 여러분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십자가를 바라보면 왜 그렇게 감사한지 내가 뭐라고 왜 날 그렇게 사랑하셨는지 왜 그렇게 바보처럼 나를 버리시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셨는지 음란했던 호세아의 아내 고멜처럼 하나님 버리고 세상의 것이 좋아 그렇게 떠나가고 배신했던 저와 여러분을 왜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셔서 다시 기회를 주셨는지 그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용서받음의 감격으로 다시 뜨거워지는 이 사순절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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