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03.21 | 요한일서 2장 15-17절 | 이선기 목사
요한일서 2장 15-17절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사순절 새벽 묵상
독수리 한 마리가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있는 호수를 날면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독수리의 눈에 죽은 양 한 마리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독수리는 쏜살같이 내려와서 양의 시체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꽉 움켜쥐고는 그 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죽은 양은 계속 물살에 따라 폭포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고기를 뜯어먹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독수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날개가 있으니까 폭포에 떨어지더라도 아무 상관없어! 얼른 날아가면 되지!’ 그러는 사이에 죽은 양은 점점 떠내려가서 나이아가라 폭포에 와서는 물줄기와 함께 빠른 속도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독수리는 먹기를 중단하고 위로 솟구쳐 오르기 위하여 날개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독수리의 발톱이 죽은 양의 몸속에 너무 깊이 박혀서 빠지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이 독수리도 양의 시체와 함께 폭포수에 휩쓸려 떨어져 어이없이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편을 밀수해서 큰 재물을 모아보겠다는 어떤 여인이 아이를 업은 등에 아편을 감추고 압록강을 건너는데 기차 안 저쪽에서 국경 세관원이 나타나자 안절부절못하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침착하려고 무척이나 애썼지만 떨려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세관원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게 되자 차라리 차창 밖으로 아편 덩어리를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창을 열고 집어 던졌는데 아뿔싸! 아편을 버린다고 던진 것이 그만 어린 아이를 창밖으로 던지고 말았습니다. 세관원들이 다가와서 가진 것이 뭐 없느냐고 묻자. "나에게는 어린 아이밖에 없습니다."라며 내놓은 것이 바로 큼직한 아편 뭉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욕심에 이끌려 잠깐 있다가 없어질 유한한 것들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인생 되지 마시고, 중요한 것, 영원한 것을 꽉 붙드는 지혜로운 인생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버릴 것을 사랑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사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는 누구였습니까? 베드로는 수제자이구요. 요한복음 19장 26-27절과 요한복음 13장 23절에 나오는 표현을 근거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께서 육신의 어머니를 부탁할 정도로 사랑받았던 제자, 심지어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울 정도로 예수님과 아주 가까웠을 것으로 여겨지는 제자, 바로 세베대의 아들 요한을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제자 사도 요한이 쓴 서신이 바로 요한 1,2,3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제자여서 그런지 요한 일서는 사랑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앞에 1-11절까지의 내용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라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요. 12절부터 시작해서 오늘 본문인 15절부터 17절까지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의 것은 유한한 것이다. 잠깐 있다가 없어질 안개와 같은 것들이다. 그 유혹에 빠지지 말고 영원한 것들을 꽉 붙들어라. 영원한 것을 사랑하라 하는 메시지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내가 살아왔던 모든 시간들을 돌아보시면서 아직도 집착하는 것들이 있다면 과감히 내려놓으시고 영원한 것을 붙드는 거룩한 결단이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좀 더 자세히 오늘 사도 요한의 메시지를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1. 첫 번째로 우선순위를 지금 어디에 두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15절 보십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여기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 즉 종류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 너무 많다는 뜻도 되고 너무 많기에 여러 가지 것들에 집착하기 쉽다는 뜻도 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즉 사용은 해도 되는데 잘 관리하면 되는데 사랑하지는 말라. 거기에 빠져서 집착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즉 모든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즉 하나님의 사랑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뒷전이 되나니. 여러분 지금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 속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우리가 잘 아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재물이 꼭 돈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명예나 권력이나 그 어떤 것들이라도 하나님과 공동으로 우선순위에 둘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원래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부터 하나님은 우선순위의 질서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우리를 지으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모든 것들을 다 다스리고 관리할 책임을 주셨는데 딱 하나 동산 중앙의 나무 선악과만은 먹지 말아라. 여러분 이게 얼마나 은혜로운 권고사항입니까? 딱 하나만 빼고 수천 수만 가지 다 맘껏 먹고 편안하게 살아라 행복하게 살아라. 다 너의 것이다. 심지어 외로워보여서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어 주시는 정말 완벽하게 다 갖추어 주시는 하나님이셨는데 딱 한 가지만 하나님과 차이를 두셨는데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 얼마나 인간이 뱀의 유혹에 약한 존재인지 그만 그 한가지 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우선순위를 깨버린 인간 그 한 가지를 지키지 못해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실낙원 해버린 인간. 그게 바로 우리의 최초 조상 이야기입니다.
아주 자주 말씀드리는 아브라함에게 100살에 낳은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바로 우선순위를 확인하는 명령이었습니다. 네가 100살에 얻은 금쪽같은 아들인데도 그럼에도 나를 그 아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그 아들을 희생할 수 있겠느냐? 정말 아들을 죽이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점검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여호수아 5장 2-9절에 보면 여리고성 전투를 앞두고 여리고성을 지척에 두고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 큰 전쟁을 앞두고 할 게 있고 안 할게 있지 먹을 것을 충분히 먹고 잘 쉬어도 모자른 판에 남성수술이라니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우선순위 점검 훈련이었습니다. 너희가 너희 힘으로 싸운다고 생각하느냐? 나를 온전히 의지하라 나를 항상 우선순위에 둘 수 없겠느냐?
여러분 우리가 이 사순절에 고기 먹는 것을 자제하고 노는 것도 줄이고 특별 새벽기도하고 금식도 하면서 자신을 절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다른 것들에 너무 집착하고 다른 것 붙들고 살았던 것들을 내려놓는 시간입니다.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다시 우선하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새로워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근원지를 확인하고 분별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16절 보십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여러분 우리가 주일에 공동회개 기도할 때 단골로 나오는 구절이 바로 이 요한일서 2장 16절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것들은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깨달으라. “육신의 정욕”은 헬라어로 “에피쑤미아 테스 싸르코스”라고 하는데 “육신” 싸르크스가 원하는대로 하는 것, 즉 프뉴마 영의 반대말로 하나님이 아니라 내 육체가 원하는 대로 감각적인 기쁨과 자극을 의미합니다. 먹고 싶은대로 먹고, 자고 싶은대로 자고, 동물과 다를바 없이 그냥 가지고 싶은대로 원하는대로 다 하는 것 쾌락주의가 여기에 속합니다. 노아 시대에 노아의 가족 빼고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의인 10명이 없는 소돔성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결국 물에 의해서 불에 의해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표현은 “에피쑤마아 톤 옵쌀몬”이라고 발음하는데 눈으로 봄으로 맞이하게 되는 욕심, 여러분 하와가 선악과를 처음 보게 될 때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창세기 3장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모든 죄의 시작은 거의 다 눈으로 보는데서 시작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롯의 아내는 뒤로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잠깐 한 눈으로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목욕하는 우리아의 아내를 보게 되면서 죄의 불씨를 당기게 되었습니다. 보는 게 참 중요합니다. 아예 안 보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잠깐 보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마지막 “이생의 자랑”은 “알라조네이아 토우 비오우” 삶의 자랑, 허영심입니다. 옷을 입고서 자랑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면서 자랑하고 싶은 것, 여러분 다윗은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요압장군을 시켜 자기의 군대 수를 조사하라고 명령합니다. 자기에게 얼마나 군대가 많은지 자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조사하는데 무려 9달 스무날에 걸쳐 조사하면서 결국 전염병으로 하룻밤에 7만 명의 백성이 죽임을 당하게 되죠. 여러분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한창 때는, 내가 젊을 때는, 나 때는 하면서 자랑하는데 시간가는 줄 모르시는 분들 있습니다. 이번 사순절에 그 자랑이 바뀌어 주어가 바뀌어 지시길 바랍니다. “내가”가 “하나님께서”로 바뀌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내 삶에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얼마나 큰 은혜 주셨는지, 얼마나 큰 복을 누리게 되었는지, 손양원 목사님의 9가지 감사처럼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순교자로 바치게 된 복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으로부터 온 것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무엇인지를 잘 분별하는 이 사순절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뜻을 행하는 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17절 보십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앞에 세상으로부터 온 것들은 “지나가되” 즉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보이는 것들이 다 없어진다. 세상의 것들을 보는 나 자신도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지나가되 없어지되 사라지되, 무엇만 남는가?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즉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면서 행하는 자, 즉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실천에 옮기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무엇인가? 앞에 16절을 반대로 생각하면 그 행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육신의 정욕의 반대 즉 내 육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영의 음성을 따라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때 그때 행할 것을 알려주시는 매일 새로운 그 음성을 따라 행하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안목의 정욕의 반대 즉 눈으로 딱 보기에 좋은 것에 유혹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붙들라. 돈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이 아닌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투자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생의 자랑의 반대, 나를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 자랑하시고 교회 자랑하시고 복음 자랑하시고 간증하시고 전도하시고, 예수 믿는 기쁨을 자랑하는, 내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 자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되셔서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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