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04.07 | 마가복음 15장 21-41절 | 구진모 목사
마가복음 15장 21-41절
21절.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절.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절.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절.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절.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절.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절.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절. (없음)
29절.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절.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절.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절.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33절.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절.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절.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절.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절.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절.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절.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0절.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사순절 새벽 묵상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십자가 밑의 상황과, 십자가 위에서의 상황을 잘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재판을 받는 것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밤새 대제사장의 집에서 배신의 밤을 지내신 예수님께서 새벽녁에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져서 또 그 곳에서 억울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군병들에 의해 '브라이도리온'이라는 곳, 총독 빌라도의 관정의 뜰 안으로 끌려 가셨고, 거기서 주님은 군병들로부터 심한 멸시와 모욕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마가복음 15:16-20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군병들은 우선, 주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씌우고, 갈대로 머리를 치고, 침을 뱉으며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군병들의 멸시와 심한 모욕을 받으시면서도 잠잠히 그 모든 수난을 다 당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모습으로 비추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칼을 빼들었던 베드로를 향해 주님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26:52-53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군단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는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요? 왜요? 그것은 바로 우리들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며, 갈대로 머리를 내리쳤던 군병들의 손이 바로 우리들의 손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로마 군병들이 그 손으로 왕되신 주님을 내리치고, 가시로 만든 면류관으로 주님의 머리에 눌러 씌웠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 역시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죄악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은 이러한 우리들의 손과 발의 죄악을 용서하시기 위해, 허물 많은 우리들의 손과 발을 정결케 하시기 위해, 그 모든 수욕을 잠잠히 참고 견디셨던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 죄 가운데만 있던 이 더러운 손과 발을, 주님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데 사용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골고다 언덕 위로 올라가 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15:27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여기 보면, 분명 예수님께서 혼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강도 두 사람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그것도 두 강도 사이에 중앙에 못 박히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말하려고 하는 주님의 고난은 단지 십자가에 달려 온 몸이 찢기시고, 온 피를 다 쏟아 내시는 육체적인 고통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쩌면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심한 영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아 가장 추악한 저주의 죽음을 당하게 되신 겁니다.
무엇 때문에요? 바로 우리들 때문에, 역시 저와 여러분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 진노의 자녀들인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축복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친히 그 저주의 십자가를 지신 겁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갈라디아서 2:20에 고백한 것처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진노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그러면 다음으로,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 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로마 군병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입니다. “십자가에 못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당시, 군병들에게는 사형수의 옷을 가지면 행운이 온다는 미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가지기 위해 서로 제비를 뽑았던 겁니다.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입니까?
지금 주님께서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달려 계시는 겁니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주이신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를 엮어 만든 면류관을 씌우던 그 손 때문에, 그리고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며 조롱하던 그 손의 죄를 위해, 지금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당하고 계신 겁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십자가 밑에서, 그 손으로,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옷을 챙기려고 제비를 뽑고 있는 겁니다.
또 오늘 본문 31-32절을 보십시오. “그와 같이 대제사당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 이스라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이 모습은 당시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지켜보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입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네 이 말이 맞습니다. 주님은 남을 구원하러 오셨지 자신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못 내려온 것이 아니라 안내려 온 겁니다. 남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내려 올 수 없었던 겁니다.
당시 무리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이 인간 구원이라면 쉬웠을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죄가 예수께서 달린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면 될 만큼 작은 것이었습니까? 우리 죄를 그렇게 과소평가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시고 죽으셔야 할만큼 컸습니다.
아마 주님께서 그들에게 내려오셨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주님을 믿지 못하고 배척하였을 겁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도, 공생애 기간 3년 내내 주님께서 자신의 그리스도되심과 구주되심에 대하 표적을 수 없이 나타내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도무지 주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명은 힘듭니다. 사명은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는 겁니다. 이 십자가는 주님이 죽으심으로 생명을 살리신 것처럼 우리도 마땅히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교회일 수가 없으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성도 또한 성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지라 명하신 주님의 명을 순종하여 이번 사순절에 십자가를 지는 고난에 기쁨으로 동참해 보시는 각자 은혜의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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