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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5.27 | 고린도전서 12장 1-11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전서 12장 1-11절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신령한 것에 대하여 모르기를 원치 않는다. 반드시 알아야 된다고 강조한 말씀입니다. 



그럼 뭘 알아야 되겠습니까? 먼저는 신령한 세계, 영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단 말입니다. 보이는 세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데 그냥 알아서는 안되고 잘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느낌이나 감정이나 체험에 의해서 적당하게 알아서는 안되고,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말씀을 기초로 해서,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러한 얘기가 나오게 되었는가 하면, 본문의 고린도 교회는 이방인 교회로서 처음으로 복음이 고린도에 전파될 때 복음을 받은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새롭게 교회가 서고 복음이 전파될 때는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서 강한 성령의 역사와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도 하나님의 은사와 성령의 역사가 불일 듯 일어났는데, 항상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 미혹하는 악의 세력도 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악령의 역사도 같이 그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 예언과 방언과 기적과 병고침과 신기한 현상들이 막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악령의 역사도 일어났는데, 문제는 교인들이 믿음이 약해서 분별력이 없다보니까  악령이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분별의 기준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방언은 우리만 하는 줄 압니다. 그런데 스님들도 방언을 하고, 무당들도 방언을 유창하게 잘 한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성령인지 악령인지에 대하여 분별하지 못하면, 혼동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생각에 사람들은 똑똑하고 지성적이라서 절대로 잘못된 것에 흔들리지 않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사람들은 아주 어리석은 겁니다. 사람들의 영적인 무기력이 어느 정도 인가를  오늘 본문 2절에서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우상이 끄는대로 악령이 끄는 대로 대책없이 끌려갑니다. 많이 배웠다고 해서 절대로 예외적인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한국에 가면 ‘명당자리’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보통 집을 짓는 것과, 산소 같은 것도, 명당을 쓰면 후손에게 잘되고, 장수한다고 해서 명당을 찾습니다. 부자들은 명당자리를 잡아 주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잡아달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그 가격이 보통 수천만원씩 된다는 겁니다. 



이 명당자리 잡는데는 예수 믿는 사람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분별력이 없습니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해도 영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3절에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악령이나 우상에 의하여 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니고 성령을 따라 가는 자라면 그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이 고백을 처음 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주께서 물으셨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 했습니다. 그때 주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을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러므로 네가 복이 있다” 그랬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는 나의 구주이십니다’라고 하는 말은 내 입에서 나왔습니다마는, 그 말이 나오기까지 교회도 다녔겠고 선생님이 가르쳤겠고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겠습니다마는 결국 ‘예수는 구주시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결코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성령의 역사는 뭐냐하면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는 나의 구주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그것이 성령 역사의 절정이 되는 겁니다. 대단한 능력, 죽은 사람이 벌떡 벌떡 일어나고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정말로 예수가 나의 구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많은 능력이 일어나고 희한한 사건이 발생하고 대단히 뜨거운 것 같아도, 예수를 나의 주로 고백하는데 있어서 실패한다면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건 악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 이하에 보면 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은사는 각각 다릅니다. 하나님은 한 교회에 똑같은 사람을 주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교회에 그 일을 맡은 사람이 꼭 하나씩만 있게 하십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에 와서 교회에 어떤 약점이 보이면 지적해서 광고하지 말고 자신이 하라." 네덜란드의 소년처럼 새벽길을 가다가 둑에 구멍이 나서 물이 새어나올 때 자신이 그것을 막은 것같이, 본 사람이 막으십시오. 한 교회에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그 사람이 그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 눈에 띄게 하시는 겁니다. 



 일을 할때도 “내가 이 일을 한다. 여기를 봐라” 하면 예수님이 가장 미워하십니다.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하는 것같이 기도할 때에 길거리에 서서 하지 마라. 구제할 때에 나팔을 불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제일 큰 싸움은 하나님께 보이느냐, 사람에게 보이느냐의 싸움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보이면 그 상을 여기서 받습니다 사람한테 잘났다고 칭찬 받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주님은 도무지 모른다고 하신다는 겁니다.



본문 7절에 보면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즉 은사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서 주시는 영적인 선물입니다. 



은사는 각각 다르지만 주신 분은 한 분이며 주신 목적도 하나입니다. 이것으로 서로 싸우면 그것을 주신 분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며,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팔과 다리가 싸울 수 없듯이, 눈과 귀가 우열을 가릴 수 없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합니다. 보충적입니다. 만일 그것을 모르고 서로 경쟁하기 시작한다면 그처럼 미련한 짓은 없습니다.



은사란 이런 겁니다. 밤길을 걷는데 등불을 하나 준 것과 같은 겁니다. 그 등불을 준 것은 그 사람이 잘나서 준 것이 아니라, 깜깜한 밤에 어둠을 밝히라고 준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꼭 이럽니다. “나 아니면 너희들 모두 못 보지” 이런 식으로 말을 합니다. 아닙니다. 등불을 준 것은 혼자쓰라고 준 것이 아니라, 모두를 비추어 유익하게 하라고 준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 개인들에게 주신 은사를 잘 사용할 때, 개인에게는 신앙의 성취감과 삶의 의미가 생겨나며, 교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는 과정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바로 세우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평생토록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받은 모든 은사를 통하여 모든 사람과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일에 사용되어지는 기쁨이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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