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07.28 | 고린도후서 11장 16-33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후서 11장 16-33절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18.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새벽 묵상
사도바울을 인간적인 면에서 본다면 한마디로 표현해서 참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그는 하나님의 교회에 완전히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요즘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기는 다니되 미치지는 말라.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왜 바울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자랑하는 것이 보통사람들과 다릅니다.
고린도후서 11:18절을 보면,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육신을 따라 자랑을 합니다. 즉, 외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자랑합니다. 외모, 지식, 부, 명예, 권세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무엇을 자랑했습니까? 사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이 있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3장에 보면 바울은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보통 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이런 것들을 자신은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둘째로 바울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토록 심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주님을 위해서 희생을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바울은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매도 수없이 맞아 여러번 죽을 뻔 하기도 했습니다.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했습니다. 돌에 맞고, 배가 파선하여 바다에서 죽을 뻔도 했고, 강도도 만났고, 먹을 것이 없어 여러번 굶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당한 고난을 보면 이처럼 엄청난 고난과 핍박을 받은 사람이 세상에 또 누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고생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도 42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교회를 섬기면서 수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런 고통에 비하면 그런 고난은 어려움도 아닙니다.
대개 보통 사람들은 이런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 자신의 뜻을 굽힌다든지, 포기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참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한 겁니다.
그러면 그토록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바울은 뜻을 굽히지 않고 뭐라도 말합니까?
본문 28절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고린도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평안과 부흥을 염려하는지를 보여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도 이런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바울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고,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죽은 후의 세계를 알면, 인생관이 바뀌는 겁니다. 삶이 달라 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히브리서 11:24-26절에도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 바울이나 다른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죽은 후에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은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빌립보서 3:13-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 사실을 확실히 믿고, 평생을 충성하며 헌신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을 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처럼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면서 그토록 엄청난 핍박과 고통 속에서도 인내 하면서 교회를 위하여 희생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또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면서 자신과 같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충성과 헌신의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그렇습니다. 결국은 최후의 그 순간에 가면 바울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될 겁니다.
우리 인생도 언젠가 종착역에 도달 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때에 가서 기뻐하고 즐거워 할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 인생을 가리켜서 경주장에서 달리기 하는 선수에 비유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9: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 하라”
여러분, 누가 과연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사도 바울입니까? 아닙니다. 이처럼 확실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그토록 안타까운 심정으로 호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치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시고, 이기는 자에게 최후의 승리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믿고, 참고, 인내하며, 이 믿음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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