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08.13 | 창세기 7장 1-12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7장 1-12절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새벽 묵상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십니다. 홍수의 참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6:17절에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끔찍한 홍수를 인류가 맞이하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6장에서 그 답이 나옵니다. 창세기 6장 3절에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리”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은혜가 떠나자 엄청난 파괴가 왔습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모두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니 하나님께서 운행하고 계셨던 지구가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겁니다. . 창조질서가 사라졌습니다. 모든 죄인들을 돌보셨던 하나님의 손길이 사라졌습니다.
은혜가 사라지는 곳은 언제나 질서가 중단됩니다. 죄와 무질서만이 득실거립니다. 왜 사람들이 싸우는지 아십니까?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가 시끄러운지 아십니까?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속이고, 죽이고, 범죄하고, 부서지는 일들만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은혜가 사라진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살길을 다시 한 번 보여 주십니다. 세상이 다 홍수로 멸망 당할 때 방주 안에 있는 생명들을 구원을 받았습니다.
방주는 창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 창은 하늘로 뚫린 창입니다. 이 창을 통해서 노아는 홍수 기간동안 매일 하늘만 보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홍수 때 노아에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하신 겁니다.
홍수 때 방주 밖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늘이 터지고 땅이 꺼집니다. 요즘 서울의 홍수피해를 보십시오. 노스리지 지진도 기억하십니까? 지금 방주 밖에서는 이런 지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에서 노아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노아가 한 일은 예배드리는 일이었습니다.
본문 2,3절을 봅시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 오면 /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을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둘씩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정결한 짐승이 부정한 짐승보다 많습니다. 왜 일까요? 이는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노아에게는 일년 동안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할 정결한 짐승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을 방주 안에서 살도록 한 겁니다.
그러니까 대 홍수 폭풍우 속에서도 노아와 그 가족들은 방주 안에서 매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폭풍우 속에서도 두려움이 없게 하셨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미국선교에 실패하고, 실의에 차서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배에서 풍랑을 만났습니다. 파도에 정신을 잃고 있는데, 어디선가 찬송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갑판위로 올라가 보니, 그 위에서 모리비안 교도들이 함께 모여서 찬송하는 소리였습니다.
“험한 시험 물속에서 나를 건져 주시고 노한 풍랑 지나도록 나를 숨겨 주소서 주여 나를 돌보시사 고이 품어 주시고 험한 풍파 지나도록 나를 숨겨 주소서”
찬송과 기도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파도가 무섭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이런 예배를 드렸습니다.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서 노아는 매일 에배를 드렸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격이 그들 속에 임하였습니다.
노아와 노아의 식구들에게는 홍수가 두려움이 아니라 구원의 감격이 되었습니다. 거친 비, 파도가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손길이 되었습니다. 방주 밖에는 지옥과 같은데 방주 안에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의 노래가 울려퍼졌던 겁니다.
여러분, 예배를 사모하십시오. 예배가 여러분들을 감격스러운 삶으로 만듭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들은 풍성한 은혜를 맛봅니다. 여러분의 시간과 몸 그리고 물질을 가지고 헌신하십시오.
감격을 주는 은혜가 예배입니다. 생명을 주는 은혜가 예배입니다. 세상에 힘을 주는 은혜가 예배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배를 회복할 때마다 은혜가 회복되며 삶이 회복될 겁니다.
방주는 동력이 없습니다. 모든 배는 돛을 달든지 노를 달아서 빨리 가거나 늦출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배에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동력이 없습니다. 동력이 없으면 바람부는 대로 파도치는 대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방주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방주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수 없습니다. 방주 안에서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믿는 것 뿐입니다.
사람들은 말 할 것입니다. 인생에 바라볼 것이 없고, 힘도 없고, 내가 스스로 할 수 없다면 그것이 지옥이 아니냐고 할 겁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간 인생들의 고백은,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는 고백입니다. 허무하다는 겁니다. 자신의 뜻대로 살아온 것 같지만, 계획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인생을 의미있게 사는 것은 자기 스스로 살아 갈 때가 아닙니다. 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 갈 때입니다. 은혜의 길을 따라 갈 때 인생이 풍성해지고, 형통해지는 겁니다. 은혜 속에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겁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방주를 통해서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길을 보여 주신 겁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