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04.27 | 말라기 2장 17절-3장 06절 | 이선기 목사
말라기 2장 17절 - 3장 06절
2장 17절.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3장 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2절.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절.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4절.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절.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6절.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새벽 묵상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종말을 이렇게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초만원 극장 밖에서 불이 났습니다. ‘불이야!’ 소리를 지르면 많은 사람이 넘어져 발에 밟혀 죽게 될 아비규환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한 배우가 공연을 멈추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차분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지금 밖에서 불이 났습니다. 여러분이 한꺼번에 뛰어나가면 모두 죽습니다. 출입구는 뒤와 좌우에 하나씩 있습니다. 출입구 가까이에 있는 분부터 차례로 나가시면 좋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관중은 그의 말이 연극의 일부인 줄 알고 박수를 치며 웃고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상황이라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믿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연기가 스며들어 오고 불길이 순식간에 극장 안을 뒤덮었습니다. 이미 때는 늦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부활의 소망이 가득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부활의 확실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종말의 순간이 갑자기 찾아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황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초림이 있으셨고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으며 말씀하신대로 분명히 재림하실 그 날을 예상하고 준비하면서 준비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말라기의 네 번째 설교의 결론 부분입니다. 장차 주의 길을 예비할 자로 오게 될 세례 요한의 출현과 그 이후 이 땅에 초림하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등장에 대한 예언이 말라기 선지자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오늘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초림하실 때를 예언한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을 살펴보며 지금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다시 주님께서 재림하게 되실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초림 때는 처음이라 깨닫지 못하고 연약하여 주님을 직접 보았음에도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미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신앙의 선배들과 여러 가지 전통을 돌아보면서 이미 임하신 주님의 초림의 모습을 참조하여 분명히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고 수정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1. 첫 번째로 주님이 오시기 전에 미리 사자를 보내시는 하나님, 주의 길을 예비할 사자를 잘 구별하고 그의 인도함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장 1절 보십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말라기의 이 예언이 있은지 대략 4세기 반이 흐른 뒤에 AD 27년경에 예언한 대로 정말 주의 길을 예비할 사자가 유대 광야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의 임무는 주의 길을 평탄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즉 뒤에 메시야가 오시니 지금 회개하라. 세례요한은 이 사역을 감당하다가 어떻게 삶을 마무리합니까? 조용히 순교함으로 주의 길을 평탄케 하고 사라져 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오실 주님. 재림의 주님을 예비하는 사자의 목소리를 잘 구별하시고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예비하는 목소리도 초림 때에 세례요한과 다르지 않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여러분 다른 종교랑 구별이 모호해 지게끔 그저 이 땅의 축복, 보이는 소유의 복을 주로 전하는 선지자는 참 선지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회중들이 하나님을 떠나 있던 회중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듣기 싫어해도 참 복음, 진실한 복음을 전하는 자가 주의 재림을 예비하는 선지자입니다. 아까 처음 말씀드린 비유처럼 바깥에 불이 난 극장에서 사람들에게 차분히 살 길을 안내해 주는 이가 바로 참 선지자입니다. 잘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복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선지자가 참 선지자입니다.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아합과 여호사밧 연합군이 전쟁하게 될 때에 400명의 선지자들이 나와서 전쟁에서 꼭 승리할 것을 예언합니다. 시드기야라고 하는 선지자는 뿔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꼭 전쟁에 승리합니다. 염려 말고 출전하십시오 권유합니다. 아마도 아합도 여호사밧왕도 기분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딱 한 명 미가야라고 하는 선지자는 실패를 예언합니다. 왕이시여 하나님께 기도해보니 이 전쟁을 하지 말라 하십니다. 실패한다고 하십니다. 결국 누구의 말이 맞습니까? 400명이 합쳐 예언해도 그 예언은 이미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먼 예언이었습니다. 결국 아합왕은 전쟁에서 화살에 맞아 죽어가게 되었다는 사실
두려움과 떨림으로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구별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귀에 듣기에 좋은 메시지가 하나님의 메시지가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는 이 시대의 세례요한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내 죄를 깊이 깨닫고 회개 운동이 일어나고 너무 죄송해서 내 대신 십자가지신 주님의 희생에 너무 감사하고 죄송해서 저절로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 이게 바로 세례요한의 강력한 메시지를 들은 참 성도의 모습입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게 하도록 결심하는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주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답을 주시는 하나님, 유한한 인간의 머리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답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을 3장 1절부터 읽지 않고 2장 17절부터 읽었습니다. 2장 17절에서 던지는 질문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질문을 던지며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선동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들이 바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2장 17절에 여호와를 괴롭게 하는지도 모르고 괴롭게 하는 자들이 했던 말을 보십쇼.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나야 할 텐데 봐라. 얼마나 잘 먹고 잘살고 있느냐?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즉 너희들이 생각하는 정직하고 진실한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하고 놀리며 비꼬는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박국 선지자가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높은 성루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까? 하나님 의롭고 정직한 사람들은 왜 그리 찢어지게 못살고, 불의를 행하는 악한 자들이 너무 잘 먹고 잘 삽니다. 이거 불평등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하박국에 어떻게 답하십니까? 하박국 2장 4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즉 당장 눈앞에 불공평 때문에 낙심하지 말아라. 의인의 기준은 눈에 보이는 풍족이 아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삶의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믿음이 최고의 가치이어야 한다.
참 감사한 것은 하박국이 하나님께 받은 답변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1인칭으로 직접 답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의문점과 조롱을 하는 이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대답 5절 보십쇼.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혹시나 몰라 마지막 문장은 이게 바로 내 말이다. 하시고 아주 확정지으십니다. 5절 끝에 보십쇼.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이 얼마나 확실하고 통쾌한 분이십니까? 한순간에 우리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답을 주실 수도 있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질문에 답이 되시는 분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 역사를 시작하셨을 뿐만 아니라. 역사를 끝마치실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본심은 소멸이 아니라 정화임을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6절 보십쇼.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본심, 속마음이 아주 분명하게 보입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심판의 불로 심판하시되 소멸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화하기 위함 깨끗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속마음이었다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만들고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 부르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시며 화가 나신 하나님 백성들을 소멸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시고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엎드릴 때에 마음이 풀어지셔서 백성들에게 다시 살길을 열어주십니다. 여러분 이게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살 길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 모든 백성에게 열어주시는 하나님
이단들이 자주 들고 나오는 요한계시록 7장의 십사만사천명, 이것은 구원받을 사람이 딱 14만 4000명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12지파 곱하기 각 만 이천명씩 해서 합 14만 4천명 즉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숫자가 바로 14만 4천명, 즉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그게 14만 4천명입니다. 진작 오셨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재림의 때를 또 연기하고 연기해 오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소멸이 아니라 정화 때문이었습니다. 2절과 3절에 보면 금과 은을 “연단”하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금과 은이 연단되어야 금과 은의 가치가 더 올라가고 금과 은의 본모습이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순간 저와 여러분이 예배하는 이 곳에도 하나님 임재하셔서 한 영혼이라도 더 정화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한 사람이 라도 더 죽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 본심 이 마음 때문에 독생자를 저와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보내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게 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전함을 통해 하나님의 본심이 흡족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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