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08.16 | 창세기 8장 13-22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8장 13-22절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새벽 묵상
여러분 기독교인을 사물에 비유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회자와 모든 성도들에게 다 해당되는 내용인데 들어보셨습니까?
1. 첫째로 기독교인 가운데에는 달구지 같은 기독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끌어 주지 않으면 꼼짝도 안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하지 않고 억지로 잡아 끌어야만 겨우 끌려오는 사람. 목회자 중에도 겨우 겨우 억지로 목회하는 분이 있죠
2. 두 번째로 연 같은 기독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항상 거룩한 척하고 높이 높이 날아오르는 것 같지만 끈에 매여 있습니다. 더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는데, 언젠가는 이 줄이 끊어질까 봐 위태위태하다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고양이 같은 기독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쓰다듬어 주면 좋아하고, 조금 건드리면 물어요. 그저 자기만 위해 달라고 하는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약간 미성숙하죠.
4. 네 번째로 풋볼 같은 기독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풋볼, 이 럭비공은 둥글지 않고 계란처럼 타원형으로 길쭉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땅에 떨어지는 날이면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어요. 이리 튀고, 저리 튀고...
5. 다섯 번째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과 같은 기독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끔벅 끔벅하는데 이게 켜진 것인지 꺼진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대요.
6. 마지막으로 어쨌든 여러 모양의 교인들이 있는데,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분명한 것은 이들이 다 성장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점점 더 그리스도께 가까이,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성장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셨는데 비록 부족하고 연약함 투성이 일지라도 주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점점 성장해 가는 그래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성경에서 가장 성장한 가장 성숙한 그리스도인 중에 둘째가 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노아입니다. 창세기 6장 9절은 정확하게 노아가 얼마나 성숙한 대표적인 하나님의 사람인지를 이렇게 표현해 놓았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의인이요 당대에(그 시대 전체를 통틀어) 완전한 자, 이 얼마나 특별한 표현입니까? 저와 여러분도 의인되시고 당대에까지는 아니더라도 LA에서 만이라도 완전한 그리스도인, 완전한 목회자, 완전하고 건강한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노아가 왜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평가받아 마땅한 사람인지 그 이유를 명확히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 이래서 노아가 의인이라 하는구나. 완전한 자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시고 저와 여러분도 노아 못지 않은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1. 첫째로 노아는 멈추어 기다릴 줄 아는 자였습니다. 13절 보십쇼.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왔습니다. 노아는 오랫동안 열지 못했던 방주 뚜껑을 제쳐 열고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이 걷히고 땅이 드러난 모습,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아름다운 새 땅, 여러분 얼마나 감격적인 순간이었을까요? 그런데 이 13절 바로 다음에 분명히 물이 걷힌 새로운 땅을 보고 노아와 가족들이 뛰어 나오고 각종 동물들도 기쁨으로 뛰어나옴을 기록했을 듯 한데 14절 보십쇼.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15절 사이에 보니 그 어디에도 모든 방주에 있던 이들이 뛰쳐나왔다 하는 구절이 보이지 않습니다. 18절에 가서야 비로소 방주에서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18절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19절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중요한 것이 15절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앞에 7장 5절에는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즉 아무리 방주 뚜껑을 열고 땅에 물이 마르고 새 땅이 들어난 것을 보았을지라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고 잠잠히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그 찬양가사처럼 아무리 눈으로 보기에 다 된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을 잠잠히 기다리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행동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아무리 때가 안 된 것 같아도 내가 보기에 이건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믿고 나아가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내 뜻이 아닌 날 만드시고 이끌어가시는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사울왕은 아무리 블레셋이 코 앞에까지 왔어도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올 때까지 제사장이 와서 제사를 집례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지 않고 대충 제사장 없이 제사를 때워버립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첫 번째 이유가 이것이었습니다. 사사 입다는 암몬 족속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장로들이 자신을 찾아왔어도 자신이 아무리 싸움에 능해도 절대로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저들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나가 싸우겠다고 고백합니다. 전쟁에 승패는 군사의 많은 것도 아니고 무기도 아니고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그게 바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16절에 이렇게 다 표현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일일이 다 표현하시는 하나님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17절 보십쇼.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즉 창세기 1장 22절에 주셨던 그 축복을 다시 재확인시켜 주시면서 만물에 대한 책임감을 주시고 자부심을 갖게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처음 만든 세상은 결국 인간의 이기심으로 다 망가졌으나 다시 세상을 지으시고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라 하시며 막중한 책임을 다시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사람의 많고 적음, 세상의 권력을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는 주께서 가라시면 가고 잠시 멈춰서라면 그대로 멈춰서는 절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가장 먼저 여호와께 제사드렸다는 것, 노아에게 삶의 첫 번째 우선순위는 늘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앞에 홍수 이전에 노아가 하나님의 뜻대로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노아는 사람들의 놀림과 조롱이 상당했지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교제와 그 말씀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노아는 조롱하던 사람들이 물 속에서 다 죽어갈 때에 다시 확신했을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 말씀이 맞습니다. 늘 하나님이 옳습니다. 하나님만이 진리이십니다. 고백했을 것입니다. 이제 홍수가 다 끝나고 방주 안에서의 삶이 다 끝나고 새로운 세상에 나오게 되었어도 노아는 역시 변함이 없었습니다. 여호와께 가장 먼저 제단을 쌓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느부갓네살의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고 뜨거운 풀무불 속에 들어가게 된 것 하나님 우선주의를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동쪽 창을 열고 하나님 앞에 예배한 것 역시 하나님을 우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킬 때에 사람들이 놀라 바나바는 제우스 신이다. 바울은 헤르메스 신이다 높이려 하는 그 때 바울과 바나바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사도행전 14장 15절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즉 우리가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니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실 분이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새벽에 나오시는 것 졸리고 피곤한데도 하나님 앞에 첫 시간을 드리는 것 하나님 우선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삶의 우선순위 “먼저”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핸드폰에 바탕 사진, 지금 무슨 사진이 올려져 있습니까? 손자 손녀입니까? 여러분은 비로소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아내 사진이 제일 먼저입니까? 공처가입니다. 그저 대부분 자기 사진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아마도 외모가 내 삶의 우선 순위입니다. 내 삶의 가장 먼저가 무엇인지, 내 결정에 가장 먼저가 무엇인지 살펴보시고 하나님을 우선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변함없이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노아가 번제로 제단에 드렸다는 것에서 전부를 드리고 내 모든 것을 다 희생하여 드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20절을 보십쇼. 앞에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까지만 해도 말이 됩니다. 제단을 쌓고 제사드렸겠구나 하는 것을 쉽게 예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기자는 그 이후에 더 자세하게 노아의 제사드리는 모습을 세밀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여기서 우선 “번제로” 드렸다고 했는데 번제는 히브리어로 “올라”라고 발음하고 뜻도 올라가다, 타오르다 그런 뜻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번제로 드리는 제사는 다른 제사보다도 제물 전부를 남김없이 온전히 불태워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제사방식이었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린다. 그래서 앞에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라는 표현 중 “모든”이란 표현이 번제의 뜻을 가장 잘 살려주고 보충하는 표현이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김없이 전부를 드리는 제사 번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드리는 번제의 사람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집사람과 4년간 연애할 때에 주머니에 있는 모든 돈을 집사람 가방에 다 넣어주고 버스비까지 넣어주어 걸어서 한 시간 집에 간 적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면 남김없이 모든 것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생명을 주셨을까요? 전부를 다 내어주신 하나님 사랑 기억하시면서 전부를 받았기에 전부를 드릴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 단에 드렸다는 것 20절에는 “단”에 드렸다는 표현이 두 번 나옵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에서 제“단”, 히브리어 “미즈베아흐”입니다. 맨 끝에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이것도 미즈베아흐입니다. 이 미즈베아흐는 “죽이다”, “피를 흘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여 나를 죽이고 피를 흘려 드리는 것이 “단”입니다. 제단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희생하면서 제사드리고 있습니까? 예배드리고 있습니까? 편하게 유투브로 집에서라도 어디서든지 영상으로 예배드리게 되어 너무 편하십니까? 원래 참 제사, 예배에는 반드시 나를 죽임, 나를 희생함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내 시간, 내 물질, 내 가진 모든 것들을 철저히 희생하여 드리는 예배여야 한다는 것, 내 욕심도 죽고 내 자존심도 죽고 내 고집도 죽고 나를 죽여 산 제사로 드리는 예배 참 예배드림이 바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라는 사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시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며 제물되신 주님의 피값으로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 구원하신 그 사랑을 평생 잊지 않고 저와 여러분도 모든 것을 다 드리는 그리스도인, 나는 죽고 나를 드리는 거룩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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