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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청첩장

새벽예배 2022.02.21 | 누가복음 14장 15-24절 | 이선기 목사



누가복음 14장 15-24절


15절.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6절.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절.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절.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절.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절.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절.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절.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절.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2월 21일 새벽 묵상


여러분 혹시 같은 날 결혼식과 장례식을 참석하게 된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요 한 12년 정도 된 것 같은데 한국에서 결혼식과 장례식을 같은 날 참석하게 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결혼식의 주례와 장례예배 집례를 같은 날 1시간 간격으로 집례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주례라서 밝은 색 넥타이를 매었다가 너무 잘 생겨 보여 신랑보다 잘 생겨 보이면 실례가 되는 것 같아서 조금 덜 밝은 색 넥타이를 매고서 결혼 주례를 잘 마치고 1시간 후에 바로 검은 색 넥타이를 바꾸어 매고 삼성 의료원 영안실에 가서 장례 예배를 집례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실컷 웃고 기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가 1시간 후에 어두운 얼굴로 금방 눈물이 날 것 같은 얼굴로 장례 집례를 하게 되었는데 선배 목사님들이 목사가 되려면 연기력이 뛰어나야 한다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더라고요.

오늘 우리가 묵상할 본문이 바로 예수님의 혼인 잔치 비유인데 겉은 결혼식 잔치인데 속에는 마치 장례식과 같은 슬픈 마음이 느껴지는 비유라고 하겠습니다. 본문에 모면 사실 정확하게 혼인 잔치라고 본문에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16절에 그냥 “큰 잔치”라고만 되어 있어서 다른 잔치일 수도 있지만 동일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관복음의 마태복음 22장을 보시면 마태가 혼인 잔치라고 표현했고, 본문 전체의 분위기를 보아도 기쁜 잔치임에 틀림이 없어 예수님의 혼인 잔치 비유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한편 오늘 본문에 16절에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는데 라고 되어 있는데 전체 본문을 살펴보면 아주 쉽게 이 잔치 청함이 바로 주님의 청첩장, 주님이 초대하신 구원의 자리로의 초대로의 비유이구나 하는 것을 대부분의 분들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잔치에 초대된다면, 주님의 청첩장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아멘하고 꼭 가시게 되지 않을까요? 이미 초청받고 참여하고 계신 것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평생 동안 이 큰 잔치에 혼인잔치에 초대된 감격과 참석하게 된 감동을 붙잡으시고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결혼식에 초대하실 때에 감격하여 아멘 하고 달려가면 좋을 텐데 문제는 초청을 받고도 가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유대인들의 결혼식 풍속을 좀 아셔야 하는데 유대인 결혼 풍속은 한국 결혼식 같지 않고 미국 요즘 결혼식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즉 먼저 결혼잔치를 계획하고서 잔치가 배설되기 전에 손님을 미리 초청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잔칫상을 다 차려 놓은 후에 손님을 데리러 종을 보내어 모셔오게 합니다. 즉 1차 연락하고 2차에 실제로 모셔 오기에, 1차 때 어느 정도 참석여부를 다 파악하게 되고 2차는 거의 1차와 오차가 없이 99.99% 참석하게 됩니다. 여러분 요즘 미국에서 결혼할 때 우선 청첩장 보내서 참석여부를 확인하고 심지어는 고기 먹을 건지, 생선 먹을 껀지 적어서 보내지 않습니까? 참석해 보면 이름표가 붙어 있고 지정석까지 다 정해져 있습니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청첩장을 보내고 선물도 겹칠까봐 미리 온라인으로 들어가서 안 겹치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심지어 cash로 할 건지 살림살이를 거기에 정해 놓은 것 클릭해서 선착순으로 카드로 사시도록 아주 편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미국 결혼식처럼 유대인의 결혼식도 1차의 응답과 2차에 종들이 모시러 올 때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2차에 안 온다는 것은 아주 예의에 어긋나는 것, 사고가 나서 못오는 것은 몰라도 거의 그런 무례한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십쇼. 16절에 1차로 많은 사람들을 청하였고 거의 온다는 인원이 파악되었는데 17절 잔치할 시각이 되어 종을 보내어 실제로 오게 하였는데

18절 보십쇼. 한 두 명도 아니고 3명이나 전혀 다른 답을 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가 아니라. 아예 거절을 합니다. 18절 한 사람은 밭을 사서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나를 사양해 하도록 하라. 19절 보십쇼. 또 한사람은 이르되 소 다섯 겨리 즉 10마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즉, 둘씩 짝지어 밭을 갈게 될 소들의 균형을 맞추어 보러 가야하니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20절 보십쇼.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물론 율법에 따르면 유대인들 중에 장가든 자에게는 1년 간의 병역 의무를 면제해 주도록 되어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랬다면 미리 사양을 했어야 했는데 왜 이토록 시간이 다 되어서야 거절하는가? 이렇게 예의 없고 실례를 범할 수가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1. 첫 번째로 복음을 무시한 유대민족을 책망하시는 주님의 한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셔서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내신 그 사랑을 깨달으면 당연히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그 초청에 기꺼이 응해야 할 텐데, 내 욕심에 꽉 사로 잡혀 있어서 이 땅의 것에 대한 탐욕의 손을 전혀 놓치 못하는 이들. 구원의 초대를 무시하는 이들

다시 18절을 보십쇼. 밭을 사서 나가보아야 해서라는 핑계는 “밭”은 곧 재산, 땅의 소유, 즉 물질의 든든함 때문에 복음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아간이라고 하는 사람이 여리고성 무너질 때 몰래 물건들을 도둑질하여 제비뽑아 발각되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초대교회 생활에서 땅값을 감추어 결국 줄초상을 당하게 되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산 밭 때문에 잠깐 쓰다가 두고 가게 될 내 것인 것 같지만 내 것이 아닌 밭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이 다 되어 두고 가야할 육신이 들어가게 될 곳은 겨우 땅 반평 남짓 밖에 안된다는 사실 기억하시고 밭에 가야할까 초대받은 혼인잔치 가야할까 선택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19절에 소 다섯 겨리는 소 10마리 가지고 열심히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복음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복음을 듣고도 무시하고 무관심 하는 이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치 200년을 살 것처럼 할 일을 크게 크게 너무 많이 벌여놓아서 수습이 안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제가 가끔 말씀드리는 청년이 있습니다. 15년 전에 목사님 제가 딱 100억만 모으면 교회 다시 나와서 십일조 팍 하고, 목사님 교회 반 뚝 띄어서 50억에 하나 지어드리고..그 청년 15년이 되도록 아주 안 돌아오고 있습니다. 나중에 50억이 아니라 지금 내가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구원받은 감격으로 적은 헌금이라도 지금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지금 하시기 바랍니다. 내일은 안 올 수도 있습니다. 내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 누가복음 12장 20절 뭐였습니까?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내일이 아니라 오늘 지금 최선을 다하는 주님의 청첩장에 바로 아멘 하시고 핑계대지 말고 그대로 따르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20절 보십쇼. 또 한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아까 말씀 드린 대로 1년 병역 의무를 면제해 주도록 되어 있기에 복음을 무시하게 된다? 가정 때문에 복음을 무시하게 된다는 거죠. 집안의 종교가 다르면 안 되서 교회 못오겠다고 하시는 분들, 집사람과 혹은 남편과 싸우고 싶지 않아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교회 못 오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가정의 참 평화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왜 모르는지...안타까울 뿐입니다. 앞 장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살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즉 밭이나 소나, 결혼이나 다 책임지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가시는 주의 손길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2. 두 번째로 유대인으로 선택받았다는 특권의식을 깨버려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15절 보십쇼. 예수님이 지금 어떤 지도급 바리새인의 집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상황인데 15절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이 표현은 유대인들의 전통적 메시야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히브리 용법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천국 향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즉 유대민족은 당연히 그 옛날부터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 잡혀 하나님 나라도 당연히 들어간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꼭 초청받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으로 채우신다. 그래서 21절 시내의 거리와 골목에 있는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게 하셔서 채우라 하십니다. 24절에 보면 좀 더 효과를 극대화하기를 원하셔서 그러셨는지 대박 쇼크를 받으라고 하신 표현인지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24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여기서 “하나도”라는 표현 보십쇼. 얼마나 철저한 표현입니까? 헬라어로 “오우데이스” not one 즉 한사람도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다. 청함 받고 반드시 따라오는 자만이 잔치에 참여한다. 너희 유대인들 아니면 사람이 없을까 보냐? 시내 골목에서 약자들 데려다가 채워지지 않으면 23절 종을 시켜 강권하여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울 수도 있다. 즉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으니. 안심하지 말고, 오래 믿었다고 그냥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즉 너희들이 그렇게 붙잡고 있는 율법 그걸 오랫동안 고수한다고 해서 저절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나를 믿어야 한다. 내가 메시야임을 믿으라.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지식적으로 많이 안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부모님부터 지금까지 몇 대동안 오래오래 했다고 해서 그냥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를 몇 십 년 다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구원이 이루어지고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는 착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안심하지 마시고 늘 영적으로 긴장하여 깨어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아직 기회가 있으니 열정적으로 영혼구원에 힘쓰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22절 보십쇼.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첫 초청에 오지 않은 이들을 대신하여 몸이 불편한 이들 약자들로 다 채웠는데, 그래도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무슨 뜻입니까? 아직 복음의 기회가 남아 있다는 표현입니다. 세상의 혼인잔치는 손님 다 안 와도 시작할 수 있지만 천국 혼인 잔치는 자리가 다 차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하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23절에 주인이 다시 이릅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길이든지 산울타리 가이든지 가서 강권하여 최선을 다하여 기회 있을 때 열정적으로 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채우는 자가 되라 하시는 주님의 강력한 권고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속에 강권하여 주님의 청첩장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전도는 전도 특공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용서받은 주의 자녀라면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은 자녀라면 당연히 꼭 해야 하는 것이 복음 전하는 일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날 구원하신 주님의 음성을 마음에 새기시고 가만히 있지 마시고 달려가고 뛰어가서 강권하여 채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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